<<이 글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전시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적는 글이니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중인 Spaces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가보는 전시회였다. 꼭꼭 씹어서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하나의 장소에서 작품들이 이해가 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창업자 서성환(1924~2003) 선대회장은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여성, 화장, 녹차와 관련된 공예품과 도자기를 수집했었다고 한다. 이를 수집하고 전시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사용했고 굉장히 넓고 큼직큼직한 전시공간으로 유명한 듯하다.
건물이 정말 멋있었다!! 큼직하니 원뿔 기둥도 시원시원하고 보기 좋았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설치 작업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건 이 작품이다.
전선을 한 손으로 붙잡고 있는 남자. 전시장에 들어갈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 보고 나니 이 작품들을 만드는 작가를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이것은 도전이다.라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긴 철장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용감한 도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금함 작품은 사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미국 모금함에 별거 별거 다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서 그 생각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내려가 오디오 가이드를 받고 가방을 라커에 넣으러 들어가는데 세상에..
라커룸이 이렇게나 견고하고 예쁠 일인가?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라커를 걸어 나오며 볼 수 있는 화장실 앞 변기.
위트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생긴 건 여자 변기 또는 아이들의 변기처럼 생겼지만 그림자로 인해 남자 소변기처럼 보인다.
전시개요와 맵을 가볍게 보고 시작한다.
본격적인 전시는 5개의 방으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방 Shadow House, 2024부터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집. 전형적인 미국인의 집처럼 보인다.
정말 사람처럼 생긴 소년이 유리에 I라고 적고 있다.
다른 한 손은 가슴팍에 얹어놓은 것을 보아 나.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나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소년을 바라보는 시꺼먼 색의 새가 있다.
독수리처럼 생겼는데 목을 쭉 빼고 있는 것이 소년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소년을 지켜보고 있는 관찰자의 역할인 것 같기도 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줄 몰랐다.
밖에서만 안을 들여다보는 줄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집을 들어가길래 그제야 알았다. 들어가도 된다는 것을.
집 안에는 정말 다양하고 소소한 작품들이 많았다.
단서를 찾고 이야기를 해석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찰떡인 전시라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의미를 찾는 게 정말 재밌고 단단하다고 느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장화인데 구멍이 뚫려있다.
누가 봐도 비를 막아주는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처럼 생겼다.
그리고 이 장화는 굉장히 무거워 보이고 불편해 보인다. 장화를 신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화는 정말 불편하고 무겁긴 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물건으로 집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는 것이 의미 깊게 느껴졌다.
집 안에는 2개의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이 있었다.
첫 번째 방은 작업실 같은 공간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진 않았지만 모형 건축물이 있었고 실시간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평범한 한국 채널 라디오였다.
건축물 모형 옆에 있던 조각 작품이다.
천이 덮여있는 채로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
이때부터 아.. 동성애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아티스트들이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집을 들어서기 전 봤던 "I"를 유리창에 그리고 있던 한 소년이 떠오르며 스토리라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천을 감싼 상태로 입을 맞춘다.
우리는 뭔가를 가려야 할 때 또는 감추어야 할 때 천 같은 것을 활용하여 가린다.
이들의 입 맞춤은 누군가에게는 썩 좋은 광경이 아니기에 천으로 감쌌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바로 옆 방은 아이의 방 같아 보였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침대.
현관에서 봤던 구멍 뚫린 장화가 생각났다.
물건에게 부여받은 명분을 다하지 못하는 물건은 과연 쓸모없는 걸까 유니크한 걸까?
침대에 눕게 되면 비로소 나를 찾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도 생각했다.
가장 나다운 시간을 가지게 되는 건 아무도 없는 침대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 아닐까?
혼자 몰래 울 때도 보통 침대에서 울게 되고, 두려움과 걱정에 잠에 들지 못할 때도 침대에서 괴로워하게 된다.
작가가 이런면까지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벽에는 하늘의 얼굴을 한 소년과 야구베트 그리고 책 한 권과 색을 잃어버린 퍼즐이 있었다.
이 소년은 누구일까.
퍼즐을 맞추어야 하는데 온통 하얀색이라 힌트가 없다.
shape만 남아버린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런 퍼즐이다.
이 또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물건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림 맞은편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있는 책상이 있다.
퍼즐처럼 모두 새하얀 색이다.
드론과 VR 기계를 쓰고 있는 조각상을 보았을 때 이 소년은 하늘을 참 좋아하나 보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은 이 소년의 섬세하고 차분한 성격을 나타내는 듯하다.
Winner과 Loser의 색이 같다. 공의 모양도 같다.
의미가 없다는 뜻인 걸까. 어렵다.
HOME IS THE PLACE YOU LEFT라고 적힌 글귀 앞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한 소년의 그림이 있다.
아무래도 이 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힘들어하다가 집을 떠났나 보다.
바이올린 모양의 형태라고 생각했는데 반고흐의 귀라고 한다. 엘림그린과 드라그 셋 작가가 뉴욕 맨해튼에서 선보였던 거대한 설치미술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
이 작가들에게 반고흐의 귀는 무엇인 걸까. 나중에 따로 찾아봐야겠다.
이 방에 색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이 소년이 떠나면서 색을 찾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는 긍정적인 해석방법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소년은 본인의 색을 찾지 못해 굉장히 괴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방을 나오면 화장실이 있다.
두 개의 세면대가 있고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다.
미국 드라마 Better call Saul에 사울과 킴이 함께 동거를 할 때 각자의 세면대를 쓰던 장면이 떠올랐다.
각자의 세면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들의 독립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아래 붙어있는 수도관은 연결되어 있다.
끈적하게 느껴진다.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샴쌍둥이가 떠오른다.
연결되어있었던 관계를 끊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복도에도 작품들이 몇 가지 전시되어 있다. 작품이지만 집의 소장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게 아이러닉 하게 다가온다.
거실에는 멋들어진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특이하게 생긴 탁자와 기다란 소파.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최소 10명은 족히 앉을 것이다.
특이하게 생긴 조명이 있다. 화장실에서 봤던 이어져있는 세면대가 떠오른다.
작업실에서 봤던 천으로 가려진 채 입맞춤을 하고 있는 조각상이 떠오른다.
뭔가가 단단하게 얽히고설킨 느낌을 받는다.
이 작가들은 조명을 정말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의 구조와 빛을 잘 활용한다.
거실에 있는 디자인적인 싱크대와 이를 반사하는 빛 그리고 방에 있던 2층 뷰.
굉장히 세련됐으며 뭔가 배운 변태들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두 작가의 작품들이 매우 센스가 있다고 느낀다.
거실 한편에는 뫼비우스 띠 같은 계단에 주저앉은 소년과 책을 타파하고 싶어 하는 책 거치대를 볼 수 있다.
이런 하나하나의 센스가 남다르다고 느낀다. 하나하나 보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첫 번째 방인 Shadow House에서만 몇십 분을 보냈다.
"I"를 적고 있는 소년의 뷰에서도 밖을 바라보았다.
이 소년은 I를 적고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저 멀리 있는 시꺼먼 새를 보고 있던 것 아닐까?
새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이 소년은 너무 깊은 심연이 있기에 새의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알파벳 I 로 보이던 것은 새가 앉아있는 나무를 그리고 있던 것일지도 몰라.라는 생각 을 하며 첫 번째 방을 떠난다.
집에 들어갈 때 보였던 아이스박스가 보인다.
집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은 의미가 명백했고 하나하나 들여다보기도 쉬웠다.
속이 후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집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이 닫혀있는 아이스박스는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열어 볼 수 없는 아이스박스로 꽁꽁 감춘다.
엘림그린과 드라그셋은 정말 변태임이 분명하다...
다음 방에 대한 후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전시를 열심히 즐긴 만큼 사진도 많이 찍었고 쓸 내용도 많다 보니 한 번에 정리하기는 무리가 있다.
<<to be continu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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